"어머님, 반찬이 싱거워요." "싱거운 게 몸에 좋아, 그냥 먹어 인마."

지난달 21일 낮 12시 대구 대명동 한 건물 3층 사무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별을 만드는 사람들(별만사)'이란 간판이 걸린 사무실. 중간 큰 테이블에 10대 소년소녀 여섯명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 가정 폭력 등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다.

사무실 구석의 부엌에선 한 30대 남성이 밥과 반찬을 퍼날랐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어머님'으로 불리는 '별만사' 대표 심규보(35)씨다. 대구 관내 9개 경찰서에서 가출·비행 청소년 심리 상담을 전담하는 범죄심리사인 심씨는 작년 2월부터 '별만사'를 운영하고 있다. 별만사는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고 학업과 생활비 지원 등을 해주는 단체다.

심씨는 매달 심리 상담과 외부 강연 등으로 버는 돈 400만원 중 300만원을 아이들을 위해 쓴다. 지난 3년간 1000명이 넘는 가출·비행 청소년들을 도왔다. 이런 공로로 심씨는 지난 1일 경찰청 감사장도 받았다.

심씨가 자비(自費)를 들여 위기 청소년들을 돌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보면 내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심씨는 폭력 등 전과 2범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7년 말 IMF 사태로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그의 삶이 크게 굴절됐다. 이혼한 어머니에게 매달 아버지가 보내주던 생활비가 뚝 끊긴 것이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중3에게 불행은 한꺼번에 닥쳤다. 심씨는 1998년 2월 한 번도 걸려보지 않았던 후천성 뇌전증(간질) 발작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때부터 우등생이었던 심씨의 방황이 시작됐다. 술·담배를 입에 대고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 한 달 만에 자퇴했다. 분노와 방황은 범죄로 이어졌다. 18세에 가게 물건을 훔치다 소년원에 갔다. 출소 후 20대에는 합기도 사범과 전기기사 등으로 돈을 벌었지만, 스물여섯 때 여자 친구를 때려 구속됐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같은 방에 절도죄로 수감돼 있던 50대 남성이 탄원서를 썼는데 맞춤법부터 문장까지 모두 엉망이었다. 안타까워서 도와줬는데, 이 남성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심씨가 써준 탄원서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심씨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는 수감자들이 늘었다. 조폭, 살인범, 좀도둑, 사기꾼 등 죄목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부모가 없거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등 결손가정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00장 넘게 탄원서를 써주면서 심씨는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껴봤다고 한다. 그리고 열 달 만에 출소해 '나 같은 아이가 안 나오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두 번째 출소 후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10년 넘게 놨던 책을 다시 붙들고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낮에는 전기기사로 돈을 벌고, 밤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2009년 한 지방대 청소년학과에 들어가 청소년지도자, 범죄심리사, 전문상담사 자격증을 차례로 땄다. 영남대병원에서 임상심리 전문가 수련 과정을 이수한 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년쯤 일하다 보니 상담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심씨는 "범죄에 빠지는 청소년들은 대개 갈 곳이 없다 보니 유흥업소나 조폭 등의 유혹에 빠진다"고 했다. 자기 돈을 들여가며 '별만사'를 운영하는 이유다. 별만사를 시작한 뒤 3일에 한 번씩 오던 발작이 거의 사라졌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 심적으로 안정된 덕분이다.

심씨의 이름은 별 규(奎)자에, 도울 보(輔)자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이름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사람은 누가 곁에 있느냐에 따라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성장하기도 하고, 구치소에 들어가 별(전과)을 달기도 합니다. 제 역할은 제 이름처럼 아이들이 빛나는 별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원문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0/2017011000179.html
날짜 : 2017년 1월 10일